크리스토퍼 콜럼버스 (Christopher Columbus)

미국 대륙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원주민의 금을 노리고 폭력을 휘두룬 인성이 나쁜 탐험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우리가 아는 콜럼버스인데요.

1차 방문의 목적은 돈과 노예였으며 2차 방문은 원주민의 학살이었다고 합니다. 금을 내 놓지 않으면 살생을 저질렀으며 2년동안 10만명을 살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중에는 금을 캐는데 실패하자 모든 원주민은 노예로 팔아넘겨 버렸다고 하네요.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제노바에는 한 항해사가 살고 있었으며 인도로 가는 빠른길을 찾으려고 했으며 황금이 모래보다 많은 곳을 찾으려는 꿈이 있었습니다.

당시 십자군원정이 끝난 뒤에 많은 사람들은 동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중국 원나라를 여행 후 쓴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본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도에 가면 진주와 향신료가 넘처나고 황금으로 꾸민 도시가 있다는 말에 많은 상인들은 돈을 벌고 싶어졌죠. 그리고 각 나라의 왕들도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이 상인들을 도왔다고 하는데요. 또 다른 이유로는 동방에 크리스트교를 퍼트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여러 이유들도 사람들은 인도를 행해서 떠나기 시작을 했는데요. 당시에는 육지는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고 있어서 바다를 이용해서 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확한 바닷길이 없는 상태라서 정말 힘들었고 어려웠다고 하네요.

그러나 콜럼버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인도를 향해서 가는 것이 아닌 서구를 통해서 돌아갈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콜럼버스를 미쳤다고 했어요. 그러나 유럽 사람들은 당시에 세상의 끝은 인도라고 생각했으며 가다보면 인도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 무렵의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으며 콜러버스만이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다고 한는데요. 당시 천문학자인 토스카넬리가 대서양을 가로지르면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라는 격려하는 편지를 주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의 왕실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했으나 당연히 거절을 당하고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여왕이 콜럼버스에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에스파냐는 포르투갈과 경쟁을 하고 있었으며 콜럼버스를 통해서 새로운길을 찾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은 반대로 향하는 콜럼버스를 두려워했으며 지원자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콜럼버스 선원으로는 감옥에 있는 사형수나 죄수들이 죄를 용서받기로 하며 선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1492년 콜럼버스는 산타 마리아호와 세턱의 배를 가지고 에스파냐 항구를 떠났습니다. 에스파냐호는 항해를 한지 69일만에 육지에 닿을 수 있었는데요. 이곳을 ‘산살바도르’라고 부르겠다고 했으며 이곳이 바로 인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의 한 섬이었다고 해요.

콜럼버스는 그곳을 인도로 믿었으며 원주민을 잡아 에스파냐로 다시 돌아갔는데요. 에스파냐로 가서 여왕에게 이번에 발견한 산살바도르는 넓은 땅에 무엇이든 심을 수 있으며 원주민들은 순하고 다루기 쉽다고 했다는데요. 에스파냐 이사벨라 여왕은 너무 기뻐했다고 해요.

1년후에는 다시 인도라고 믿고 있는 아메리카로 17척의 배와 1,500명의 일꾼들과 함께 갔는데요 인도에 있다던 향신료와 황금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맨 처음에 말씀드린 것 처럼 있지도 않은 금을 찾기 위해서 원주민에게 금을 캐라고 시켰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되자 기대를 하고 있던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여왕은 큰 실망을 하였으며 더 이상 콜럼버스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콜럼버스 또한 죽을 때 까지 아메리카가 인도라고 생각하고 생을 마감했다고 해요.

콜럼버스의 어디를 발견했으냐가 아닌 자신들이 모르는 대륙을 발견했다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항해사들과 상인들이 새로운 땅, 새로운 항로를 찾기 위해서 떠났다고 하는데요. 포르투강과 에스파냐의 새로운 항로를 찾기 위해서 다퉜으며 이렇게 해서 포르투갈은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일부를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대부분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