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암살당한 대통령.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제임을 하고 남북전쟁에서 북군을 지도해 노예 해방을 이룬 대통령인데요. 가장 유명한 것은 게티즈버그에서의 연설인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라는 말이죠.

에이브러햄 링컨은 켄터키주의 호젠빌에서 출생을 했습니다. 가난한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노동을 했으며 교육도 잘 받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어 스프링필드에 개업을 하게 됩니다.

링컨은 1834~1841년에 일리노이 주의회의 의원으로 선출이 되었으며 1847년에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미국멕시코전쟁에 반대로 인해서 하원의원직은 1기로 끝내며 다시 변호사로 돌아가게됩니다.

당시 노예문제가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었으며 정계로 복귀하기로 결심을 하고 미국 공화당에 입당을 하게되는데요. 대통령선거전의 공화당후보 플레먼트를 응원하면서 자신도 함께 알려지게 됩니다.

1858년에 일리노이주 선출의원에서 상원의원선거에 민주당의 S.L.더글라스와 논전을 펼치면서 링컨은 더욱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데요. 공개논쟁에서 링컨은 ‘갈려서 싸운 집은 설 수가 없다. 나는 이 정부가 반은 노예, 반은 자유의 상태에서 영구히 계속될 수는 없다고 믿는다’라느 말을 하며 인민주권론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패하였지만 링컨의 7회에 걸친 토론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유명세를 떨치며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지명을 받게 된 이유는 노예제에 대한 견해가 그렇게 급전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 선거에서는 민주당에서의 노예제 유지의 브리켄리지와 인민주권의 더글라스로 분열이 되면서 링컨이 당선이 되게 됩니다.

당선과 함께 남부연합국을 결성하게 되었으며 남부에 자리잡고 있는 노예제도를 바로 해방시킬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자유주의로 할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링컨은 취임을 하자마자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유지하여 이를 구제하는 것이지, 노예지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4월 섬터 요새의 남군의 공격으로 해서 남북전쟁이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을 할 당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요청하였으며 독재적 권한을 행사하여서 인신보호령장의 정지 그리고 언론집회의 자유의 제한을 강행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함으로써 반대당으로 거센 항의도 함께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링컨은 여러 세력을 조정해서 북부의 강경론자들을 누르며 노에해방을 점진적으로 단행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북군에게 밀렸지만 노예제도의 폐지를 예고하고 외국의 남부연합국 승인을 저지하면서 북부와 해외언론을 자기편으로 만드는데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1863년에는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게티즈버그국립묘지 설립의 연설에서 링컨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다시 재선하는 것이 불투명해졌으며 U.S. 그랜트가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후에 승리가 계속되면서 재선에 성공하게 되는데요.

1865년에는 남군사령관 R.E리가 애포매턱스에서 그랜트에게 항복하면서 남북전쟁은 끝이 날것이라고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렇게 전쟁이 끝날무렵 남부의 조기 연방 복귀를 생각했으나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연극관람중에 남부인 배우 J.부스에게 피격당하며 다음날 아침에 사망에 이르게됩니다.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을 공포하였으며 일리노이의 이류 변호사가 신의 도구로 쓰인 경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노예해방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전의 미국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기 까지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던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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