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아인슈타인이 바람둥이였던 것을 아시나요? 첫 번째 부인과 결혼한 상태에서 7년간 사촌누나와 바람을 피웠었다고 하네요. 이혼을 요구했으나 부인이 거부 ‘나에게 친밀한 사이를 기대하지 마라’등의 이상한 조건문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혼을 하고 사촌누나와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정신병을 알던 둘 때 아들은 물론 전 부인과 가족들에게는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사촌누나와의 재혼을 하였지만 역시나 바람을 다시 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와이프는 해고하기 힘든 직원 같다’라는 말도 남겼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바람둥이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업적도 알아볼 텐데요. 가정사와 바람기는 인성 이러려니 하고 이제는 지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 14일 독일의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의 울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는데요. 아버지는 평범한 사업가였으며 가족들은 특유의 유대교 의식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흔하디 흔한 학습과 교육방식을 싫어해서 안 좋은 행동도 많이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청소년 이에는 수학과 물리학에 취미를 가졌으며 아라우에 있는 주립학교로 진학해서 과학수업에 심취했었다고 하네요. 이 시기에 가장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는데요. 취리히 년 방광과 대학에 낙방해서 재수를 하여 물리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요. 대학에서는 고전 물리학에 염증을 느끼고 루드비히 볼츠만, 구스타프 키르히호프 등의 이론 물리학자들의 저서를 읽으며 혼자 공부를 하였다고 하네요.

199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이 되려고 했지만 취직을 하지 못하고 베른 특허국의 관리자로 5년간 근무를 했다고 하는데요. 1903년에는 대학 동기이며 공동연구자였던 밀레다 마린과 결혼을 하였으며 15년 후에 이혼을 했습니다. 위에 말한 이혼이 이 이혼 같네요. 특허국에 일하면서 발명품을 검사하지 않을 때에는 물리학을 연구했다고 하네요.

1905년에는 광양자설이라고 빛이 에너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발표했으며 브라운운동 이라는 물질의 원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특수상대성이론이라는 시공간에 대한 입장을 완전하게 뒤엎을 만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들은 단 8주 만에 작성되었으며 그동안 생각해 왔던 인식을 바꿔놓는 평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모두 알고 있었던 길릴 레이나 뉴턴 역학을 특수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기본을 흔들었으며 시간과 공간 개념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또한 철학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 발견은 미래의 원자폭탄 가능성을 예언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브라운운동에 대한 연구는 분자물리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광전효과를 설명하는데 플랑크 복사법칙을 통해 광양자설로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1911년에는 국제물리 학회가 최초로 개최가 되었는데요. 당시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인정을 받았으며 형이상학에 반대하고 철학은 과학으로부터 결론을 얻어야 한다는데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대학교수 겸 카이저 빌헬름 연수소 소장으로 취임을 했는데요. 그동안의 특수 상대 송이론을 중력이론이 포함된 이론을 확대하고자 일반상대성이론을 1916년에 발표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중력장에 속하는 빛은 구부러진다는 현상을 예언하였는데요. 이것이 일식 관측대에 의해서 확인이 되었습니다.

광전효과 연구와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업적은 1921년에 노벨물리학 상을 받았으며 중력장 이론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을 중력장과 전자장의 이론으로 통일장이론으로 확대도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발견과 예언을 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특유의 외모도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헝클어진 머리와 콧수염 그리고 보헤미안적인 스타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으며 유대민족주의이자 시오니즘 운동의 지지자였다고도 하네요. 그리고 평화주의자로도 활약을 했다고 하는데요.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이 추방되자 1933년에는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학교 교수로 취음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원자폭탄 연구에 몰두를 하게 되어서 미국 또한 원자폭탄을 가질 필요성을 느껴 당시 대통령인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이것이 바로 맨해튼계획의 시초가 되어 미국에서도 원자폭탄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통일장이론에 힘을 쏟았는데요. 일반상대성이론은 리만기하학을 이용해서 2차 대칭하는 텐서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말년에 통일장이론의 경우에는 2차 대칭이 아닌 텐서에 의한 이론인데 아인슈타인 최후의 통일장이론이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국에서는 아인슈타 인상을 만들었으며 해마다 2명의 과학자에게 이 아인슈타 인상을 주고 있다고 하네요.

대단한 연구가이자 과학자였지만 사생활에서는 바람둥이로 살았던 아인슈타인인데요. 엉뚱한 듯하면서 치밀하고 꼼꼼한 모습으로 정말 많은 이론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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